일상의 이야기

창해..박창해

jss6674 2010. 5. 14. 16:23

영천으로 내려온후로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결혼 초 대구에서 만난적이 있었다. 식류 유통업을 했더랬는데, 지금도 여전히 같은 일을 한다고 한다.

지난 어버이날 고향에 들렀다가,수산집에서 내비에 주소를 쳤더니 30분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표시가 되길래 영천으로 돌아오는길에

집을 찾아갔더랬다.

내비가 정확히 한집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 일대를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았다.

아주 어렴풋하게 남아있던 기억속에 집과 유사한 폐가옥이 한채 있었다.

마굿간옆 쪽방과 마당 건너 큰방 ..뭐 이런거 였다.내 두뇌는 이따위의 것에 무언가 묘한 재주가 어릴적부터 많았다.

무감각하고 객관적인 사물따위에서 어떤 인상이나 정서로 이미지화하는것, 풍경화를 마음속에 그리는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어릴적 공상을 많이 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뭐하는지 몰라?

시골에서는 잘 작동을 했지만 도시길에서는 이게 통한적은 한번도 않았다.

 

2년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신후 살지않는 폐허가 된 집이었다. 

윗집 한우 축사하는 분께 박창해 이름을 대었더니 아신단다. 그 집이 맞단다.

옛날엔 축사가 없었던것 같은데..

창해 형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신다. 축사를 하시는 분도 친척 형님이라신다.

밀양에 사시는 형님과 통화한후 창해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기 무안 판곡리 42번지 일대, 그 시골 동네끝 산 바로 밑자락,

2010년 아직도 그 숭악한 촌골짝 한구석,

저녁 어스름 빛아래서

십수년만에

창해에게 전화를 걸었더랬다.

참 반가웠다. 하지만 친구는 여전히 걸걸했다.대구에 살고 있고 하는 일도 여전하단다.

귀농,영천,직장,명예퇴직 여러 얘기들이 오가고,대구 교회 얘기까지..

예수쟁이를 제일 싫어 한단다.큰애가 중학교 리틀야구선수란다.경주에서 내일 시합간단다

한참동안 그곳 판곡리 동네어귀에서

서성거리며 통화를 했다.

아직도 정말 깡촌이다.옛날 이곳에 놀러왔을떄 면내에 갈려고 경운기를 타고 얼마를 달렸는지 모르겠다.

 

통화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은 무안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었다. 고등학교떄는 이도로가 자갈길의 비포장

도로였었고,길이 좁아서 버스라도 마주치기라도 하면 폭이 넓은 길한편에서 마주오는 차를 기다렸다가

다시 가던 길을 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해가 져서 어둠이 내린 밀양 시가의 불빛을 지나간다. 낯익은듯 낯선 거리의 모습이다.

불이 꺼져 있는 어스름한 학교 전경을 지나쳐 새로 난  길이 잘 닦인 4차선 외곽도로를 타고 얼른 밀양을 벗어나버렸다.

옛생각으로 일부러 시내 구석을 들어갈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길이 자연스럽게 이 빠르고 신속한 이 4차선 도로와 연결이 되어버렸다.

내비가 그리로 가는걸 명령했다.

묘한 외로움같은 추억으로 가슴이 냉수라도 마신듯 시려온다.

그날 저녁,

어버이날 저녁 수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친구의 핸드폰번호를 알아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