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야기

어제 모처럼 쉬는 날..

jss6674 2010. 6. 9. 22:45

전화 메시지를 늦게 확인 했더랬다. 평소에는 전화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나 한테 오는 핸폰은 거의 대출소식뿐인지라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았더랬다. 게다가 승현이 핸폰 잃어버렸을때 내껄 가져갔더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그렇게 알람용으로 둔감해 있었던 차다.

혹시, 대구 교회집사님이나 구역장이 문자로 보내는 것은 일주일에 딱 한두건씩이니...이만하면 거의  핸폰을 두고 다닐만한 정도였다.

 

헌데, 어제 문자가 왔었다..회사에서 정말 한때 열정을 같이 쏟아 부었던 광우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다.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나이도 그리 썩 많지 않은을 같은데..일전에 전화로 지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는 걸 기억했다.

쉬는날  떄마침  막걸리를 먹고 있었고, 일찍 잤었다. 잘때는 내일 새벽에 갔다올까? 아님 오전 제초를 마치고 갔다올까? 고민하면서,,

전 날 저녁엔 오전일을 마치고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래야 회사 동료와 후배들도 볼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 도무지 잠 들수가 없어서, 막걸리 1병을 더 먹고, 먹다 남은 소조까지 다 마시고서야 한 3시경 되었을까?

잠이 들었든게 ,  9시넘게 일어나 부랴부랴 출발을 했던 거였다.

 

사실. 술에 수면제도 두 알 먹었었다. 난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맨날 새벽녁이 다 돼어서야 겨우 잠이 든다. 그래서 수산 아버지 용으로 나온

수면제를 먹고 했다. 아버지는 수면제를 장복하고계시있었고, 연세 87이니까, 시골마을에서 수면제를 곧잘 처방해준다. 늙어면 잠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늙은 할아머지는 일찍 잠을 자야 하는 게다. 일찍 꺠어나는건 둘쨰 문제고..

그런데, 여기 영천에 오셔서수면제를 먹지 말라고 하셔서 그뒤로 딱  그만 드셨다가, 막내 아들이 오면 필요하냐며 한 두통을 주관 하셨던랬다.

아버지 심장도 수면제가 문제가 되지만  연세떄문에 기력이 없어서 수면제를 장기복용하면 아침에 일어났을떄도 더욱 기력이 떨이져서

악순환이 반목된다는  의사선생의 얘기였던게다.

 

지난 겨울 처음 이사 왔을때  8~9시만 되도 졸려서 잠이 들었었는데, 담콤한 잠자리, 그 뇌사상태와 비슷한 잠결을 느낀지가 회사다닐떄 부터 줄곧 문제였었다. 무언가 달라지겠거니 했지만..아니나 다를까 몸이 새 생활에 적응을 하니까 동일한 증상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다.좀 더 가벼운 예초기를  가지러 간 아들에게 이것 저것 챙겨주시는 걸 보면..

그렇게 우리 아버지의 장남과 아버지가 계시겠지만,,,

회사 후배 광우는 참 열정적으로 같이 일했었더랬는데..이런 나이에 돌아 가셨다.

그렇다고 사람이 죽는 건 변하지 않는다.

손주까지 봤어니 다행이다. 내 어머니는 막내아들 장가드는걸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그래서 우리 딸과 아들한테 미안한데,,외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직 젊어셔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막내 아들한테 병원에서 일본 칼이 좋다더라고 얘기하고 칼 좀 사와라라고 한발이 마지막 유언이 되다 시피앴다.

일본 출장 가기전에 마지만 본 병원에서 본 모습이 다 였다.

출장중에 일본으로 전화가 와, 큰 형의 얘길 듣고 김해공항에 내려서 밀양까지 오는 내내 어찌 그리 눈물이 났던지? 기사아저씨가 물어보기도 했었다. 몇 녗만에 돌아오시는 건지하고..

그 덥던 여럼 좁은 방 작은방에서 바로 오늘 비행기표가 없어서 다음날 표로 돌아왔을때 그 때의 느낌이란..그 더운날 입관을 하지 못하고

막내아들 얼굴이라도 보고 입관해야 한다고 날 기다렸다고 했다. 누구 주장인지는 아직 모르지만,,도착하자 마자 방에 곱게 누워 있던 엄마의 그 평온한 얼굴을 난 생전 처음으로 보았다.

그렇게도 평온한 얼굴이었다.

난 손발이 마비가 되고..움추러들었었다.

 

어쩄던,어쩄던 말이다.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그떄의 심정이 든다.

집사람도, 나의 딸 승현이도 , 태현이도,,소통은 없다.

 

난 그래도 좋다.